2024. 3. 18. 17:06ㆍ심리학
슬픔과 우울의 예
라라의 남편이 어느 날 심장마비로 죽었다. 남편이 많은 재산을 남겨주어서 라라는 일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대체로 온화하고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슬픔이라고 느껴본 것은 15세에 사랑하는 자매가 죽어서 애도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 것 외에는 딱히 없었다.
라라는 남편이 죽은 후에도 큰 괴로움이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라라는 자신을 돌보지 않았고 대부분 집에만 있었고 컴컴한 방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며 남편이 물건을 살폈다. 옷을 갖추어 입거나 씻거나 다른 모든 일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가족이나 친구들은 같이 있자고 했으나 라라는 잠이 오지 않았고 몸이 여기저기 아프다고 했다. 가족들은 혹시라도 라라가 자살을 할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라라와 남편과의 관계는 전반적으로 좋았고 가끔씩 다정하기도 했고 말다툼도 헸다. 남편을 잃은 것을 비극으로 여겼고 자기도 남편과 같이 죽었어야 했다고도 말했고 남편이 없는 자신의 삶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라라는 남편이 죽은 지 1년쯤 되었을 때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치료를 받기로 결심을 했다. 심리치료는 약 없이 3개월 정도 이루어졌는데 여러 가지 일에 관심을 보였다. 혼자 요리하기, 자원봉사 등 친구들도 사귀고 활동을 하게 되었다.
가끔씩 남편이 기억날 만하면 슬픔을 앓는 기간이 있으나 새로운 패턴의 삶이 시작되었고 슬픔의 순간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지속되는 시간도 짧아졌다.
심리학적 분석
라라는 남편의 일을 중심으로 자신의 삶을 살았고 자신이 의지 할만한 일이 거의 없었다. 남편이 죽음에 대해 한동안 대처 할 수 없었다. 상실이 일어났을 때 무감각증세를 나타냈고 겉으로는 아무런 감정이 없이 보인다.
라라는 평소역할과 기능을 잃었고 자신의 삶을 재조직할 수도 없었다. 희망이 없었고 이것은 우울의 뒤에 놓인 개인적인 의미였다.
위기의 상황은 끔찍한 상실이나 외상의 결과로만 보는 것이 아니다. 상담에서는 상실의 문제가 개인적인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 문제에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 다루고 감정적인 지원을 다룬다. 환자에게 스스로 일어난 사건과 겪었던 감정을 기억하고 말함으로써 다시 겪도록 하며 그것이 개인적인 실마리를 제공하게 된다.
라라는 강하고 똑똑하고 탄력 있는 여자이기 때문에 치료에서 이익을 얻었고 다른 만족스러운 삶을 살게 되었다.
슬픔의 여러 가지 얼굴
슬픔은 우울이 아니다. 상실 이후에 슬픔은 사람의 기분을 지배하는 일이 드물다. 슬픔, 애도, 우울의 자극이 되는 것은 상실의 대부분이 일정한 기간 동안 갈등을 겪는다고 볼 수 있다.
초기애도 기간에는 상실의 개인적인 의미가 죽음이 일어났다는 것을 거부하고 일은 것을 복구하려는 애를 시도에서 은폐될 수 있다. 상실의 정확한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다. 상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다라서도 달라진다. 슬픔에 대한 전의를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집중했다. 그러나 중요한 상실은 일자리를 잃거나 연인으로부터 거부를 당하거나 자연재해로 집을 잃거나 등도 사별과 비슷한 의도의 느낌을 자아낼 수 있다.
복구 불가능한 상실이 슬픔의 극적 플롯이며 잃어버린 것을 다시 가져올 가능성은 거의 없으을 이해해야 한다. 상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애도, 그리고 상상의 궁극적 수용
애도를 하는 사람은 상실을 막는 방법 또는 상실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돌이키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는다.
분노, 불안, 죄책감, 희망은 애도가 슬픔으로 바뀌는데 나름의 역할을 한다. 애도에서 생긴 분노는 사건이나 죽음에 책임져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으로 향할 수도 있고 외부기관이나 정부 부서로 향할 수도 있다. 사별한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은 죄책감이나 수치심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애도에서 생기는 불안은 삶과 죽음의 중심적인 의미와 개인적인 정체성에 대한 위협의 결과다. 애도에서 생기는 죄책감은 자신이 죽음을 막기 위해 죽기 전에 그 사람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그 사람에게 충분히 감사하기 위해 편안하게 죽게 해 주기 위해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다는 믿음에서 나올 수도 있다. 애도에서 생기는 희망은 특히 상실 직후에 죽은 사람이 살아 있는 사람에게로 복귀하기를 죽음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기를 악몽이기를 바라는 일이다.
우울과 절망
우울은 감정적인 것이지만 별도로 구별되는 하나의 감정은 아니다. 우울은 애도와 희망이 없다는 느낌의 산물로서 분노, 불안, 죄책감 등의 복합적인 산물이다. 임상적으로는 두 가지 종류의 우울이 있다. 생물학적인 우울과 사회생활의 샐 패의 결과로 생기는 우울 즉 외생적 우울이다. 내성적 우울은 약으로 치료를 한다. 사회적 삶의 실패에 대한 반응으로 생기는 우울에 대해서는 어린 시절에 외상을 준 상실에 취약한 상태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나중에 우울증에 걸리기 쉬워진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의 상실은 자신과 세상에 대해 생각하는 어떤 습관을 길러내고 그것들이 병적이거나 병을 만들어낸다.
우울증 환자에게는 세상이 적대적이고 추해 보일 수도 있고 그들은 부정적인 경험이 마치 파멸적인 것처럼 과잉반응을 보이고 삶의 나쁜 조건을 변화시키는 일에 대해 느끼는 무력감이 삶 자체에 대한 희망 없음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
우울은 상실에 대한 복잡한 감정적으로 반응으로 파악하고 절망은 우울 밑에 깔린 삶에 대한 관점으로 파악된다. 희망 없음은 우울의 다른 말이다. 우리 삶에 대한 희망이 없다고 느끼는 것은 특정한 상실을 복구하는 것에 무력감을 느끼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이다. 이미 죽고 싶을 수도 있고 삶을 지탱할 만한 것도 즐길만한 것도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슬픔과 관련된 이상한 몇 가지 점들
눈물과 연관이 있는 사건들은 슬프거나 우울하거나 애도할 때나 불행한 상황들이 있는데 우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실제로 슬픔을 느끼지 않거나 누군가의 불행에 대해 슬픔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슬퍼서라기보다는 상대방에게 동정심과 우정을 표현하고 싶어서 다른 사람에게 우리의 이해와 지지를 다짐하고 싶을 뿐이다.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상실을 인정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이런 일은 막강한 사회적 제재를 취했을 때 일어난다.
슬픔과 행복은 불안과 마찬가지로 실존적인 특징들을 가진다. 분위기는 하나의 좁은 목표나 사건에 맞추기보다 넓게 퍼지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자신과 세계에 대한 안정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실존적인 문제들과 관련이 있다. 구체적인 사건이 슬픈 분위기나 행복한 분위기로 가져올 수 있다. 슬프거나 우울에 빠지기 쉬운 예는 나의 삶 전체가 환하게 보일 때 삶이 무질서하고 의미가 없을 때 운명이 나에게 불리할 때 휴일에 다른 사람 들은 모두 행복해 보이는데 나만 우울을 겪고 있을 때 빠지기 쉽다.
행복한 느낌도 우울과 마찬가지로 개인마다 다르며 정의 내리기가 불확실하다. 예를 들면 삶이 나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때 사랑받거나 감사를 받을 때 사람들이 선하다고 믿을때 운명이 나에게 우호적이라고 느낄 때 우리는 행복하고 마음이 가볍고 좋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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